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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그리스도인] 46.수도회 창설자편 (5)성 이냐시오(하)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05-01-23 수정일 200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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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와 동료들은 자신들을 「예수회」라고 불렀으며, 「예수회 기본법」을 작성해 1539년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잠정 인가를 받았다.
영혼 돕기 위한 영적활동 펼쳐

뜻맞는 이들과 예수회 설립

‘영신수련’ 저술해 영성심화

1522년 3월 25일 몽세라에서 약 15km 떨어진 만레사(Mannresa) 마을 근처의 동굴로 거처를 옮긴 이냐시오는 이때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한다. 기도와 극기와 명상에 몰입하였으며 구걸로 생계를 꾸려갔다.

거친 음식으로 연명하며 미사와 성무일도를 드리는 것 외에는 하루에 7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생활을 했던 그는 자신의 지난 죄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 고행을 했고 그러한 경험들은 「영신수련」을 저술하는 기본적 토대가 되었다.

이듬해 2월 이냐시오는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떠났다. 여러 차례의 폭풍을 만나야 했고 전쟁과 페스트가 난무한 지역들을 통과해야 하는 등 1년여 이상의 노력을 들이는 어려운 과정이었다.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로 여겨졌던 당시 상황에서 이를 감행한 내적 동기에 대해 이냐시오는 『나를 위해 인간이 되신 예수를 알아 그를 사랑하고 따르고자 한 것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예루살렘에 계속 남아 사람들의 영혼을 돕고자 했으나 전쟁으로 인한 위험한 상황 때문에 성지 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교회 장상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요청했고 말을 듣지 않으면 파문에 처하겠다는 위협을 가해오자 이냐시오는 팔레스티나에 영원히 머물면서 사람들의 영혼을 돕고자 했던 뜻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예루살렘을 떠나며 이냐시오가 결심한 것은 「영혼들을 돕기 위해 일정 기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바르셀로나에서 라틴어 공부를 시작으로 연학(硏學)에 돌입한 이냐시오는 이후 알칼라 대학, 살라망카 대학을 거쳐 파리에서 학교를 다니는 등 11년 동안의 공부 기간을 가졌다.

공부에 대한 열망과 함께 가난한 사도로서 사는 삶을 동경했던 이냐시오는 만레사에서 영적 상담을 시작했는데 무엇보다 자신이 체험한 것으로써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시도였다.

이냐시오의 그러한 활동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종교 재판관들의 오해를 불러일으켜 살라망카 파리 베네치아 로마 등에서 수차례 구속 심문 재판을 받는 과정이 이어졌다.

알칼라에서는 두달간 감옥 생활을 했고 또 동료와 함께 사슬로 발이 묶인채 감옥에 갖히는 일도 있었다.

파리에서는 성 바르나바 대학의 학장에게 공개적으로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오히려 이냐시오를 더욱 굳건히 단련시켜 주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편 이냐시오는 공부를 하는 동안 여러 동료들과 함께 단체를 설립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뜻이 맞는 동료들끼리 서로 도우며 활동하게 되면 영혼들을 돕는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확신을 지니게 됐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동료가 된 사람은 사보옌 출신의 페테르 파베르와 나바라 출신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였다. 그리고 포르투칼 출신의 시몬 로드리게즈와 스페인 출신의 디에고 라이네츠 등이 합류했다.

1537년 6월 24일 동료들과 함께 베네치아에서 사제품을 받은 이냐시오는 그해 겨울 동료들과 함께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로 갔는데 이때 로마 근교 라 스토르타(La Storta)라는 마을 경당에서 환시를 체험했다. 성부께서 이냐시오를 예수 그리스도와 한자리에 있게 해주시고 「내가 로마에서 너희에게 호의를 보여주리라」는 내용이었다.

이냐시오와 동료들이 자신들을 「예수회」(Compania de Jesus, 예수의 동반자)로 부르는 가운데 「예수회 기본법」을 작성한 이냐시오는 1539년 9월 3일 교황으로부터 잠정 허가를 받는 한편 1540년 9월 27일에는 예수회 창립을 확인하는 교황 교서가 발표됐다.

그 이듬해 4월 초대 총장으로 선출된 이냐시오는 4월 22일 동료들과 함께 로마 바오로 대성전에서 장엄 서원을 했다.

1541년부터 이냐시오가 선종하던 해인 1566년까지 예수회는 사도적 활동에서 많은 열매를 맺었고, 회원수는 이미 1000명에 육박하는 왕성한 성장세를 보였다.

이냐시오는 총장 선출후 많은 편지를 썼던 것으로 알려진다.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6000여통의 편지들은 수도회내의 내 외적 성장과 관련된 사항들을 비롯 교회 쇄신에 관한 것들이 많았다. 수신자들은 당시 시대를 이끌어 가던 사람들, 추기경들 그리고 주교들이었으며 무엇보다 각지에 흩어져 사도적 활동과 영적 생활에 전념하고 있던 동료들이 주 대상이었다.

1556년 7월 31일 로마에서 열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냐시오는 1609년 12월 3일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복됐고 1622년 3월 12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시성됐다.

그가 설립한 예수회는 현재 최대 규모의 수도회로서 2만여명 회원들이 127개국에서 활동중이다. 회원들중 복자 성인품에 오른 이들도 많아 2005년 현재 복자가 146명, 성인이 48명이다.

이주연 기자